오늘은 잉글랜드의 축구 천재, 웨인 루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위치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엄청난 득점력으로 맨유와 잉글랜드의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고 축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30대가 넘어서며 급격한 폼 저하로 호날두처럼 긴 선수 생활을 못 이어간 점이 아쉽다.
잉글랜드의 천재
어린 시절 리버풀 스쿨 보이스라는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루니는 한 시즌 동안 72골을 기록했다. 9살의 나이에 에버튼의 스카우터 밥 펜들턴의 눈에 들어, 에버튼에 합류했다. 1995-96 시즌에 그는 에버튼 10-11세 이하 팀에서 29경기 114골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세우고, 15살의 나이에 19세 이하 팀으로 콜업 됐다. 그리고 2002년 8월 17일 만 16세의 나이로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두 달 뒤 3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던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역전골을 넣으며 당시 프리미어 리그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듬해인 2003년 2월에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유로 2004에서는 본선 4골이라는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쳤다.
알렉스 퍼거슨의 황태자
루니는 에버튼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4년 8월 2,7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적 후 첫 경기,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에서 자신의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적 첫 시즌부터 자신의 파트너인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유럽 골든보이 상을 수상했다. 2005-2006 시즌 루니는 더욱더 성숙한 플레이를 펼치며 기복 없이 꾸준히 득점을 기록했다. 개인 수상으로는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됐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8강 포르투갈과의 대결에서 팀 동료인 호날두에 의해 퇴장을 당하며, 불화가 있었지만 사이를 회복하며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시즌 20골 고지를 밟았다. 2007-2008 시즌에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등번호인 10번을 물려받으며 맨유의 상징이 되었다. 시즌 43경기 18골 14 도움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8-2009 시즌에 루니는 프리시즌 도중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시즌 초반 다시 부진했으나, 맨체스터 시티 전을 시작으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며 프로 통산 100호 골을 기록했다. 그가 활약한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3년 연속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리그 컵 우승을 달성했다. 2004-2005 시즌을 시작으로 매 시즌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맨유의 상징이 된 루니는 2009-2010 시즌을 앞두고 팀의 간판 공격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를로스 테베즈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며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득점력이 폭발하면서 시즌 43경기 34골 6 도움을 기록하여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등 각종 개인상을 휩쓸어버렸다. 2010-2011 시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부진으로 영국 언론과 팬들의 뭇매를 맞았고, 맨유를 떠나고 싶다는 폭탄 발언을 터트렸다. 그러나 팀과 재계약을 맺었고 2011년 2월 12일에 펼쳐진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에서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을 터트리며 팀의 귀중한 승리를 이끌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며 맨유의 리그 최다 우승을 이끌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또다시 FC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거뒀다. 2011-2012 시즌에는 부상으로 결장이 있었지만 프리미어 리그 34경기 27골 7 도움을 기록하며 본인의 리그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웠지만 아쉽게도 로빈 판 페르시에 밀려 리그 득점 2위에 그쳤다.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맨유가 로빈 판 페르시를 데려오며 팬들은 루니와의 호흡을 기대했지만, 루니가 잦은 부상을 겪으며 경기에 꾸준히 나오지 못했다. 주전 자리도 대니 웰벡에게 넘겨주며 아쉬움이 있었지만 팀의 20번째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013-2014 시즌 에버튼의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가 부임하며 이적설이 돌았지만 결국엔 재계약을 맺었다.팀 내 감독 경질 등 문제가 있었지만 맨유에서의 통산 200호 골을 달성하며 시즌 40경기 19골 17 도움을 기록했다. 2014-2015 시즌 맨유 입단 10년 만에 주장으로 임명됐다. 부진과 팀 내 미드필더진 부상으로 주로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시즌 14골 6 도움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점점 부진과 부상을 이어가며 감독과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지만 2015-2016 시즌 15골, 2016-2017 시즌 8골을 기록하며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였던 보비 찰튼 경을 넘어서며 맨유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됐다. 맨유를 떠나 에버튼, DC 유나이티드, 더비 카운티 등을 거치며 선수 말년을 보냈고 현재는 은퇴 후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호날두는 골을 넣고, 메시는 드리블을 하지만, 루니는 축구를 한다
웨인 루니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것이다. 웨인 루니의 주 표지션은 공격수였지만 원톱,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 등 전 지역에서 활약할 만큼 축구 자체에 이해도가 높고 볼을 잘 차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30대 이후 급격한 폼 저하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에 비해 빨리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한창 폼일 때의 루니는 공을 잡으면 '뭔가 해주겠다'라는 기대가 되는 선수였다. 누군가는 '득점왕 한 번 못해본 선수가 무슨 역대급이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 축구계의 전설로 남았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역대 최대 득점자이며,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 2위, 통산 도움 3위를 기록 중이다. 앞으로의 감독 루니에게도 많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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